태어났다.

유도분만이었다. 의사선생님 말대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짐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부른 우버-렉서스 세단이었다-는 거북했다. 아파트 입구에 역주행으로 들어온 기사가 뉴욕 들어갔다 손님 태우고 나오기 어려우니 10달러쯤의 팁을 현금으로 달란다. 다리 건너는 톨비도 내야하고 궁시렁 궁시렁. 아재요 요금에 톨비 포함이잖수. "뭐 꼭 달라는 건 아니고, 좋으실대로 하시구려." 조수석에 올려진 물통이며 티슈를 직접 처치하고 올라탔다. 여기서 왼쪽이오? 몇 번 출구에서 내리나? 내비가 뻔히 불러주는 길을 기사는 내게 꼬박꼬박 되물었다. 아오 아저씨 쫌. 몇 분을 달리다가 우리의 목적지가 산부인과인 걸 알아챈 기사가 아까 귀찮게 굴어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이후 전원 침묵. 병원에 도착해 우리가 내린 결론은 팁 한푼도 못 줘+ 근데 렉서스 승차감은 킹메달이다. 죽죽 미끄러져 나가는게 아주 엉덩이가 녹아내린다. 우리차는 새거면서 왜 이리 털털댈까 궁금했는데 그냥 싼차여서 그런 거였어.
접수처와 층내 분위기는 한가했다. 우리 말고 혼자 온 아가씨 한 명이 전부였다. 안경, 겉옷, 가방까지 명품으로 두른 아가씨도 유도분만이었다. 파트너는 나중에 온다는 것 같다. 이곳에선 섣불리 남편, 아내라고 부르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동성일 수도 있으니까. 일찍 도착한 덕분인지 분만실은 전망이 좋은 5호실을 배정받았다. 오오 감사합니다. 왼쪽 저멀리 미드타운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허드슨강과 그 너머의 뉴저지가 보인다. JFK인지 라과디아인지에서 날아오른 비행기들이 미드타운 위를 지나 우리쪽으로 다가오며 고도를 올리는 모습이 근사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새가 무리지어 날고 시내버스가 거리를 누볐다.
담당의사보다 먼저 도착한 레지던트. 마지막으로 초음파검사를 했다. 아이는 내려올대로 내려왔고 자세가 바람직했다. 내진도 했다. 내진이라는 게 본인도 불편하고 남편도 곁에서 보고 있기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아내가 아파하고 얼굴을 찡그리면 특히 그렇다. 여의사에게 받아도 그런데 사내였으면 또 어땠을까. 다행히 우리 레지던트는 담당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웠다고 아내가 평가했다. 그것도 어감은 이상했지만 안 아팠으니 됐다. 참고로 저 휴대용 모니터는 덮어놓으면 와플 굽는 기계처럼 생겼다.
기본적인 확인을 마치고 분만유도제인 옥시토신이 등판했다. 사람마다 반응정도와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투여량을 1부터 시작해 진통이 올 때까지 하나씩 올린다. 한두 시간에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나절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단다. 이때 무통분만을 신청한 사람은 진통이 오면 마취주사인 에피듀럴을 콜 할 수 있다.
미국에선 제모와 관장을 하지 않는다. 누워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소식을 기다리며 공짜간식. 배가 불룩한 상태에서 먹다가 뭘 흘리면 배 위에 떨어진다. 그걸 다시 집어먹으면서 수달이 된 것 같은 귀여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아내가 말했다. 좋으시겄수. 뭐 머리속으로 떠올리면 확실히 귀여운 거 같지만 직접 보면 그 정도까진 아니다. 진통은 두 시간이 지나서 왔다. 잽싸게 호출버튼을 누르고 외쳐요, 에피듀럴! 마취의가 이동식테이블을 밀고 들어와 15분 가량의 작업 끝에 척추에 가느다란 튜브를 꽂아주었다. 한 번 주사를 놓고 마는 게 아니라 옥시토신처럼 계속 마취제가 들어오는 것이다. 중대한 요소인 만큼 전용모니터에 투여수치가 집계된다. 좌토신 우듀럴 체제가 갖춰진 다음부터는 하반신이 움직이지 않는지라 소변은 간호사가 기구를 들고와 빼준다는 설명이 따랐다. 사실 우리는 그런 것보다 이놈의 주사가 얼마일까가 더 궁금했다. 맹장수술 마취의 보험전가격이 8000달러였다. 훨씬 더 복잡하고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관리가 필요한 에피듀럴은 아마...생각하기도 무섭다!
그로부터 세 시간이 지나 찾아온 레지던트가 아내의 몸을 살피더니 준비가 됐단다. 응? 벌써? 간호사들은 이미 작업준비에 착수했다. 어느새 인큐베이터에 불이 들어왔다. 아까 담당간호사가 세팅하고 덮어뒀던 테이블 위에 가위와 집게 따위가 열댓 자루 반듯이 드러났다. 스테인리스날에 반사되는 불빛을 보니 확 정신이 들었다. 담당의가 들어와 앉고 간호사가 왼쪽, 내가 오른쪽 다리를 잡았다. 아내의 배에 손을 얹은 간호사가 진통이 온다고 진단하면 전원 Push태세에 들어가 힘줘라 힘내라 구호를 외쳤다. 푸시는 10초씩 세 번 반복하고 다음 진통을 기다린다. 담담의사와 레지던트가 정면에 앉아 아기 나오는 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복창을 주도했다. 병원이 진짜 한가한지 어디선가 여유인력 서너 명이 나타나 2진에서 치어리딩에 가담했다. 좋아 바로 그거야! 좀만 더! 잘 했어! 여러분의 성원에도 불구 진척이 더뎠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을 넘기고 결국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때까지 장장 세 시간이 걸렸다. 응원단은 그때까지도, 근무시간이 끝난 사람까지 포함해 남아서 아기의 탄생을 지켜봐주었다. 나탈리, 다이아나, 몰리, 케이틀린. 모두 고마워요.
감동의 순간. 이게 태어난 날 바로 되는 건 줄 몰랐어서 기쁨과 신비로움이 두 배로 넘쳤다. 엄마젖도 바로 물고 눈도 마주치고 다 하더라. 탯줄은 질겨서 커팅감이 별로였고(...) 태반은 간처럼 생겼다. 일단 애기가 나오고 나니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들은 이야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딱 하나다. 싱크대에 놓여있던 피 묻은 가위 열몇 자루. 잘 해냈어 여보. 고마워.
분만을 완전히 마치고 회복실로 이동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스태프의 인종구성이었다. 대다수가 백인이던 10층 분만실에 비해 6층 회복실은 유색인종의 비율이 월등했다. 의대에 갈 돈이 있는 계층과 없는 계층으로 분리된 느낌이라 씁쓸했다. 아기 혈액채취하는 스탭이 과자를 쩝쩝 거리며 들어온다거나-_- 산모음식은 조금도 특별할 것 없는 보통 미국음식이었다. 아침에 프렌치토스트+소시지+시리얼 줌. 주문 받는 친구가 실수로 다른 음식 가져옴. 아내가 가장 반가워한 것은 다름 아닌 종이컵에 담겨온 커피였다. 특색 없이 맹한 블랙커피가 그렇게 맛있었다고.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보슬비가 내리는 일요일, 털털대는 우리차에 아기를 눞히고 집으로 왔다. 잠든 아기의 얼굴은 정말 천사 같다. 물론 눈뜨면 논스톱모유 기저귀지옥이다. 이거 쓰는데 보름 걸렸다.

덧글

  • 2018/02/08 13: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2/08 21:5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2/08 15:1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2/08 21:5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라비안로즈 2018/02/08 15:22 # 답글

    축하드립니다. 이제 육아에 정신없으시겠어요..

    미국의 병원비는.. 상상초월이군요.
  • 나녹 2018/02/08 21:56 #

    분만비용만 11,000달러 떴네요. 곧 소아과, 회복실, 마취과, 조제실 등에서 줄줄이 날아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ㄷㄷ
  • imnew 2018/02/08 15:56 # 답글

    와 축하드려요. 남편이 보는 출산과정은 이런 거군요ㅡ ^^
    저도 기저귀 지옥에서 살고 있어서 동병상련이 느껴지네요. 조금 편해지는 그날까지 화이팅입니다!
  • 나녹 2018/02/08 22:01 #

    기저귀ㅠ 감사합니다. 정말로 하루에 열댓개를 쓸줄이야. Imnew님도 힘내세요!
  • 타누키 2018/02/08 15:57 # 답글

    축하드려요~~
  • 나녹 2018/02/08 22:01 #

    정말 감사합니다 ㅎ
  • hammondog 2018/02/08 23:22 # 답글

    축하드려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두분에게는 참 숨가쁜 시간이었을텐데 글을 맛깔나게 쓰셔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 나녹 2018/02/09 02:47 #

    감사합니다. 긴장감 제로상태로 들어갔다가 녹초가 되어 나왔네요. 운전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 에타 2018/02/08 23:51 # 답글

    축하드립니다 ㅎ 고생하셨어요. 요새는 기저귀가느라 정신없으시겠네요 ㅠ 저도 병원비 다 합치면 3만불가까이 나왔던것 같던데....보험으로 많이 까이긴 했지만 그래도 비싸더라구요. 부디 보험이 잘 커버해주기를 빕니다.
  • 나녹 2018/02/09 02:49 #

    고맙습니다~ 해를 넘기는 바람에 deductable이 리셋되긴 했는데 큰 타격은 없을 걸로 예상 중입니다. 부디 그랬으면 ㄷㄷ
  • mori 2018/02/09 01:35 # 답글

    축하드립니다!!!! 기쁜 일입니다!!!
  • 나녹 2018/02/09 02:53 #

    고맙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잘 크고 있습니다
  • 2018/02/09 10:2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2/09 13:1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2/09 13:4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2/09 21:0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2/11 17:2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2/11 21: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2/12 04:1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2/12 09:0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