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일주일 동안 가족

1. 아내의 오른팔이 펴지지 않았다. 분만실에서 힘주면서 자기 허벅지를 내내 붙들었기 때문이다. 세 시간. 정말 긴 시간이었다. 의사들이 계속 바라보고 있는 아기보다도 아내가 걱정이었다. 장모님이 아내를 낳고 죽다 살아났다고 들었다. 두 시간을 넘기고부터는 이름을 알고 있는 온나라의 신이란 신을 다 한 번 씩 불렀다. 그러고도 모자라 국내외 유명인사까지 동원했다. 아기가 나온 건 전유성에서 이회창으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내 머리속이 그 지경이었다.

2. 뱃속에 있을 때 좋아했던 Rock Your Body는 나와서도 좋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틀째 아침에 회복실에서 틀어줬더니 양팔을 붕붕 휘두르며 그루비 베이비. 집에 와서부터는 일단 재우는 게 목표라 디즈니 자장가를 틀어주고 있다.

3. 아기의 몸짓 하나하나에 모든 시선이 쏠린다. 자면서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고 성인 네 명이 자지러지며 축배를 들었다. 방금 전에 한 거 또 해도 다 뒤집어진다. 할아버지가 집에 있는 개랑 놀 때 하는 허수아비춤을 추고 아빠도 질세라 발목 꺾인 좀비처럼 비틀거린다. 아내의 얼굴이 소리내며 일그러진다.

4. 비퀴 달린 모든 것이 근사해보인다. 아기는 혼자 이동할 수 없다. 아기를 들고 있는 사람도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 이럴 때 손만 뻗어서 잡아당길 수 있는 카트나 바퀴 달린 플라스틱 서랍장 따위가 금 보다 좋다. 아기를 안고 가만히 있는 시간은 별로 없다. 뭘 먹이고 닦아주고 트림 시키고 싸매주고 달래주고 눈 뜨고 두리번 거리는 걸 사진 찍어주는 작업의 반복이다. 이에 필요한 물품을 담아서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카트가 있어야겠다. 병원 회복실에서 쓰던 상단에 침대 하단에 서랍 달린 카트가 정말 짱이었는데 사려면 비싸겠지.

5. 중국의 산모들은 첫 한 달 동안 밖에 나가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 갖다주는 보양식을 먹고 애기 젖만 물린다. 아이를 낳으며 약해진 몸을 회복해야하기 때문이다. 쭈오유에쯔(坐月子)라고 부르는 그들의 산후조리 문화다. 역사가 긴 나라의 문화라 그런지 옛날사람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이빨을 닦으면 안 된다. 잘못하면 이가 다 빠질 수가 있다. 머리도 감아도 안 되고 당연히 샤위도 금지다. 차갑거나 차가운 기운을 가진 음식을 먹어선 안 되며 냉방을 틀었다가는 죽을 지도 모른다. 그게 전통적인 하드코어룰이다. 실제로는 찜통더위에 이불 싸매고 있다가 사망한 사례가 있다. 우리는 그런 해로운 짓까진 안 하는 대신 외출이 금지다. 집앞 마트도 못 간다. 사실 나는 이러한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고 있다. 나의 부모와도 떨어져 산 지 10년이 넘었는데 다른 나라의 너의 부모와 쿵짝이 맞을 리가 있나.

6. 유일하게 허가된 외출은 소아과진료다. 병원에서 집으로 온 날은 비가, 처음 소아과에 간 날은 눈이 내렸다. 아내가 예약하려고 했던 B의사가 쉬어서 대신 K의사의 진료를 받았다. 몸무게 재고, 청진기 한 번 대고 130달러가 나왔다. 다행히 신생아 정기검진은 전액 보험처리가 된다. B의사는 일주일 뒤에 만날 수 있었다. 아내는 B가 더 마음에 든다며 앞으로도 그만 보겠다고 했다. K와는 달리 청진기를 자기 손으로 데운 다음 아기의 몸에 댔고 매너가 부드러워 이야기하기 편하단다. 분유 얘기가 나와서 이런저런 질문을 했더니 왠 샘플을 케이스로 세 개나 말 그대로 쌓아서 줬다. 거기에 이거 좋은 책이니 읽어보라며 700쪽짜리 육아서적을 얹어주었다. 분유와 책 모두 같은 회사에서 만든 거였다. 언젠가 주워들은 의사/약사와 제약회사 영업사원 간의 지저분한 관계가 떠오르는 한편 책에는 좋은 정보가 많이 들어있어 틈틈이 펼치고 있다.

7. 어쨌거나 결론은 하나. 아기는 정말 예쁘다. 남들 다 보는 공간에 애 사진을 묶음으로 올리는 마음이 이해가 되고 있다. 내 아이의 맑은 눈과 매끈한 볼딱지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사진을 선거포스터마냥 크게 뽑아 전국팔도에 방을 내걸고 지나가는 이들의 소매를 잡아끌어 얼마나 이쁜지 당장 말해보라고 채근하고 싶다. 누워서 먹고 똥만 싸는데도 이렇게 사랑스러우니 앞으로는 어쩌지. 우선 사진기술부터 끌어올려야겠다.

덧글

  • 2018/02/11 10:44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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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11 22:25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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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꿀우유 2018/02/11 17:43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육아 화이팅 하시길 !
  • 나녹 2018/02/11 22:26 #

    감사합니다 ㅎㅎ
  • 주원 2018/02/11 18:21 # 답글

    누워서 똥만 싸는데도 이렇게 이쁘죠 정말... 저도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몰입하고 잘읽었어요
  • 나녹 2018/02/11 22:28 #

    처음 돌보는 조카를 자기 자식처럼 이뻐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조카분 건강히 잘 자라길 바랍니다 ㅎ
  • 2018/02/12 11:27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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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12 12:23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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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과술 2018/02/12 15:22 # 답글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기 합해서 세식구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 나녹 2018/02/13 03:19 #

    말씀 감사합니다! 갈길은 멀지만 시작이 좋습니다. 곧 구정이네요. 행복한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ㅎ
  • 2018/02/15 14:19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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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16 13:29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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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nei 2018/02/18 22:56 # 답글

    축하드려요! 앞으로는 육아하시느라 바쁘시겠어요 ㅎㅎ
  • 나녹 2018/02/20 01:11 #

    감사합니다! 친정쪽 지원이 빵빵해서 지금까진 무난하네요. 두 분 들어가시면 헬게이트 예상ㄷㄷ
  • 2018/02/27 12:57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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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7 23:35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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